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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계종 약도암 주지 락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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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6-29 14:34 조회2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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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에 다 법이있고 중심의 일상생활에 다 법문이 있다”

한국불교조계종 약도암 주지 락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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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을 하려고 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 정법안장(正法眼)의 진리는 마음 행할 곳이 없고 말 길이 끊어져서 일체 이름과 형상이 없습니다. 이러한 현현(玄玄)하고도 묘묘(妙妙)한 이치를 입으로 아무리 말을 많이 하더라도 말뿐이요,글로써 태산같이 수 없이 쓰더라도 다만 글뿐인것입니다.

비유하면 우리가 매일 밥을 먹지만 밥의 참 맛을 말로서 형용하기 어렵고,장미꽃 향기를 맡고 그 냄새를 글로써 표현하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사십구년 동안 설법하시고 최후에는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가섭존자와 자리를 나누어 앉아 있었을 뿐이요,또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가섭존자는 미소 하였을 뿐입니다. 또한 열반하실 때에는 니련선하에서 곽(福) 밖으로 두 발을 내어 보이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유마거사도 32명의 대보살과 더불어 말로서 문답을 하고 설법도 하다

가 구경(究竟)의 불이법(不二法)을 설하게 될 때에는 묵언하였을 뿐입니다.

이 법은 입을 열면 그릇치고,열지 않으면 잃어버리고, 열지도 닫지도 않는다면 10만 8천리나 어긋난다고 하는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살펴 보아야 합니다.

이 법은 한 생각 일어나기 전에 있고,눈과 눈이 서로 마주쳐 보는데 있고,삼라만상에 다 법이 있으며,중생의 일상생활에 다 법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고 오는데도(道)가 있고,물건을 잡고 놓는 것이 곧선(禪)입니다.

또 이렇게만 집착하여 알아도 않됩니다. 설사 현현(玄玄)한 것을 말하고 묘묘(妙妙)한 것을 말하더라도 똥물과 오줌을 뿌리는 것과 같고,방망이로 치고 큰소리로 할(喝)을 할지라도 소금을 가지고 목마른 사람의 갈증을 풀어 주려는 것과 같은것입니다.

금도 불에 넣어서 단련하고 단련하여 불순물이 다 제거되어야 순금이 되어 세계에 통용하는 보배가 되듯이 사람의 마음도 닦고 수련하여야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음의 삼독심크(三毒心)이 없어집니다.

팔만 사천 번뇌망상이 보리로 화(化)하여야 그 마음이 밝고 밝아 불매(不昧)하고 요요(了了)하여 마치 밝은 거울이 허공에 달린것과 같습니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닌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알면 저 법에 자재하고 사리에 통달하는 출격(出格) 대장부가 될것입니다.

설법은 말과 글을 의지해서 하는 것도 있고,말과 문자를 떠나서 하는 것이 있는데 참으로 적실한 설법은 종사(宗師)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두 걸음 걸어나와,여러분들 앞에서 눈으로 여러분들을 한 번 둘러보고,여러분들은 종사중(師)의 얼굴을 한 번 보는데 다 들어있고,눈과 눈이 마주치는 데도 가있는것입니다.

말과 글로써 법문 듣는 것을 다문(多問)이라 하고, 말과 글을 떠나서 여래의비밀장(秘密藏)을 아는 것을 구족다문(俱足多問)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비밀은 남이 모르게 몰래 숨기는 것이지만은 부처님의 비밀장은 화반탁출(和盤托出)로 여러 사람 앞에 들어내보여도 모릅니다.

우리의 몸이 오층 석가탑입니다. 밑에 발목이 1층이요,정강이가 2층,허벅다리가 3층,허리가 4층,목과 머리까지 해서 모두 5층이 됩니다. 우리가 서서 다니면은 5층 석가탑을 운전 하고 다니는 것이 되는데 팔의 골절이 여섯 마디니 두팔을 위로 올리면 오층석가탑에 여섯층을 더한 십일층 다보탑이 되면서도 이도리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극락전으로 올라가는 돌 층계가 있는데 극락세계는 환화장엄(幻化莊嚴)으로있는 것입니다.

극락세계를 멀리 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의 몸이 곧 극락 국토요 사람의몸 생긴 구조가 우주의 생긴 형상과 흡사하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의 몸 곧 근육이요,골절은 땅 속에 금석(金石)이며,혈관은 강물과 개천이고 머리카락과 털은 초목이며,위장은 바다이고 왼쪽 눈은 해, 바른쪽 눈은 달입니다. 구품 연화대도 우리 몸에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눈이 둘이 고 귀가둘,코구멍도 둘,입이 하나,대소변보는 곳을 모두 합하면 아홉이 됩니다.이것이 곧 구품연화대입니다. 

구품연화대에 상 중 하의 삼품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것을 분석하면 눈과 귀는 상품에 속하는데 그 이유는 눈은 맑고 맑아서 이 세상에 무슨 물건이라도 들어가기만 하면 병이 나므로 모든 물건을 용납할 수 없으니 상품이 되고,귀도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므로 상품에 속하고,코와 입은 더러운 코와 가래가나오니 중품에 속하고,밑에는 냄새나는 똥 오줌이 나오므로 하품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품연화대에 청정법신 부처님이 계시지만은 찾는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도 적습니다. 극락세계도 사람의 몸에 있고 생사 열반에 관계없는 부처님도 있으니 찾아야합니다.

그러나 찾는다는 것도 우스운 말입니다. 본래 가고 옴이 없고 상주불멸(常住不滅)인데 무엇을 찾을 것입니까. 밝은 눈을 열면 활연히 나타날 것입니다. 자리를 미(迷)하면 중생이요 깨달으면 부처라 하는데 말로 하자니 부처라 하고 중생이라 하고 마음이라 하기도 하나 부처도 아니요 중생도 아니요 마음도 아닙니다. 이 자리는 일체 명상(名相)이 끊어진 곳 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에 위자사회(刺史)가 육조 혜능조사께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일을 물으니 답하기를“극락세계가 여기서 거리를 말하면 십만팔천리나 되는데 사람의 마음가운데 열가지 악한 것을 버리면 10만리를 가고 마음가운데 여덟가지 삿된 것을 버리면 8천리를 간다.”고하였습니다. 이것이 대승(大乘) 법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염불의 시조는 강원도 건봉사에 발징화상인데 사람들에게 염불하도록 권하기를,“이 마음이 부처요,이 마음이 부처를 짓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마음 부처를 증득함이요,육도(六途)중생도 본래이 부처이지만 다만 미(迷)하고 망령된 마음으로 인하여 부처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혜 있는 자는 각오(覺悟)하여 자기의 성리(性理)를 닦아 부처를 이룬 것이다. 가고 오고,앉고 누울 때라도 항상 부처를 여의지 않고 괴로우나 즐거우나 거슬리거나 순조롭거나 이 부처를 잊지 않으며 옷입고 밥먹는 데 부처 아님 없고,재재처처(在在處處)에 다이 부처이다. 모든 물들고 집착함을 버리고 손을 놓고 활발히 집에 돌아가서 자기의 부처를 보라.”하였습니다.

입으로는 부처님 이름을 크게 부르고 내관을 하지 않으면 이것은 부처님 이름을 舍불예(佛)하는 것이요,독불저(佛)하는 것이지 염불이 아닙니다.

이와같이 법문이 장문(長文)으로 된것이 모두 말이요 글 뿐이니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한가지 비유를 들어 말하면,옛날에 어떤 사람이 옷에 수체를 잘 놓는데 붉은 비단과 푸른 비단에 자기의 정력과 기술을 다하여 여러해를 걸려서 수를 놓아 광명이 찬란하여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기쁘게 하였으나 수놓는 사람의 심정은 아무리 수를 잘 놓았다 하나 원앙새 두마리를 비단에 바늘로 찔러서 나타낸 것이 부끄럽다 하였습니다. 설법도 천경만론(千經萬論)을 설하여도 다만 말과 글이지 진리를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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