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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계종 여래사 현승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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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7-10 16:53 조회2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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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계종 여래사 현승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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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스님은 금불불도로(金佛不度爐), 목불부도화(木佛不度火)하고 이불부도수(泥佛佛度水).

금으로 된 부처는 용광로불을 제도하지 못하고, 나무로 된 부처는 불제도하지 못하고, 흙으로 된 부처는 물로 제도하지 못한다고 할 했다.

현승 스님은 금이 아무리 찬란하고 불 빛나는 물체지만 용광로의 뜨거운 불 속에서는 녹아버려서 그 힘을 잃게 된다이것은 마치 지네란 놈이 아무리 독하고 흉칙한 충류이지만 닭에게는 꼼짝도 못하는 친적인 것과 같지만 그러나 지네는 죽은 닭의 뼈가 있는 곳에는 죽어라 하고 몰려드는 이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현승 스님은 나무가 산을 무성하게 하고 나중에는 재목이 되어 인간생활에 도움을 주는 물체이지만 불 앞에서는 당할 재간이 없고, 이것 역시 고양이란 놈이 쥐를 잘 잡는 것이 능사이지만 호랑이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는 이치와 같고, 또한 호랑이란 놈이 고양이를 보고 가라사대 저 놈의 꼴이 꼭 어른(호랑이)을 닮았다고 하면서 잡히기만 하면 찢어 버린다고 호통쳤지만 세상만사는 자기 욕심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극상생의 진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물주는 고양이에게는 나무에 오르는 재주를 가르쳐주었기에 호랑이가 잡으러 오면 급히 나뭇가지로 기어올라가면서 놀려주며 애를 먹인다고 한다.

진흙을 고체화시켜 놓은 조각작품이나 예술품들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물에게는 이겨내질 못하고 사르르 녹아버린다. 이 역시 쥐란 놈이 인간생활의 여러모로 괴롭히다가 고양이만 보면 혼비백산을 하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쥐가 고양이를 먼저 발견하고 도망을 가다가 구멍으로 쏙 들어가 숨어버리면 고양이란 놈은 하루 종일 쥐구멍 앞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쥐는 고양이가 노려보는 구멍 밖으로 나올 리가 없다.

그래서 고양이는 하루 종일 애만 먹고 그 날의 사냥을 허탕치고 마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이 세상 값진 가치를 가진 좋은 보물들일지라도 상극이 있는 법이다. ‘딸을 예쁘게 키워놓으면 사내가 잡아 먹어버리고, 돈도 힘들게 벌어두면 자식이란 놈들이 다 써버리고, 아들도 애지중지 키워서 부모에게 효도할 줄 알았지만 장가들고 나면 계집에 빠져서 가까웠던 부모 자식 간이 십만팔 천리로 멀어져 버린다

이러기에 이를 일러 상극상생(相克相生)이라고 일컫는다. 그렇다고 딸을 낳아 기르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돈을 모으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며, 그렇다고 아들 장가를 보내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용광로가 겁나서 금불(金佛)을 만들지 않을 수도 없으며, 불이 겁나서 목불(木佛)을 만들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며, 물이 겁나서 토불(土佛)을 만들지 않을 수도 없는 이치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삼불(三佛)이 모두 가짜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이다. 무엇이 진짜냐 하면 용광로나 불이나 물에게 녹아지거나 태워지거나 풀어지지 않는 무형이면서도 유형인 보배로운 마음을 닦아 영생과 장생하는 법을 알도록 모름지기 노력해야 됨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나무에 올라 가지를 휘어잡는 것이 넉넉히 기이한 것이 아니고 언덕에 매달려서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 대장부이다. 물이 차가운 늦가을을 밤에는 고기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매어 있던 빈 배가 명월을 싣고 돌아가고 있다.

큰 나무에 올라서 큰 나뭇가지를 휘어잡아 당기는 무모한 곰 같은 힘이나 무지한 체력 따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 이렇듯 낭떠러지의 언덕에 매달려있다가 손을 놓을 수 있는 간담과 용기와 용감성이 필요한 것이다.

대장부라고 하는 것은 남이 감히 흉내도, 모방도 할 수 없는 독보적인 준족(駿足)을 남겨야 되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역사의 백지와 모래벌판 위에 큰 한 획을 그어야 되는 것이다. ,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은 장부의 일이 아니고 필부들의 일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강가에 매어 놓았던 외로운 배가 서서히 풀려나더니 중천인 천심(天心)에서 내려 쏟아대는 달빛을 가득히 싣고간다. 수월화조(水月和照)하는 수면에 밀려서 어디론지 떠나가고 있다. 외롭고 쓸쓸하고 밝고 맑고 고요하고 조용한 정경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명상의 세계에서 우리 인생은 내면에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천성을 찾아내어 내 몸은 빈 배가 되고 나의 천성은 달이 되어 이것을 조용히 간직하고 때 묻지 않은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든다.

 

우리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을 믿고, 부모 형제를 믿고, 권력··사랑·신앙 따위를 믿고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은 일종의 맹목적이든 절대적이든 간에 믿음을 걸고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따위들도 죽음과 퇴운(退運)의 경우에는 비참한 허상으로 와닿게 된다. 꽃의 몽우리가 터지면 꽃이 피듯이, 우리 인생도 굳게 지키고 고이 간직했던 내면의 빛을 발하면 화려하고 전아하고 우아한 인생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만리장천 구름 한 점 없는 일색의 모양을 인생에 비유하자면, 사욕에 물들거나 이기욕에 침몰되거나 개인주의에 물들지 않아서 대아(大我)와 대도(大道)를 실천하는 성자의 길인 것이다. 하늘에 붙어 흐르는 달은 하나이지만 천 개로 나타나는 수가 있다. 그러나 반대로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은 만 리가 가까울 정도로 틔여진 하나의 하늘이다.

수성인(雖聖人)이라도 역유소불능(亦有所不能)하며 천지지대(天地之大)에도 인유유소감(人猶有所憾)이니, ()로 군자(君子)가 어대(語大)인대 천하(天下)도 막능재(莫能載)이오, 어소(語小)인대 천하(天下)도 막능파(莫能破)이니라.

비록 성인일지라도 불가능이 있으며, 하늘과 땅의 위대성에 대해서도 불가능이 있어, 한탄을 자아내게 된다.

여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신이나 하느님이나 아미타불 같은 전지전능한 위력체들도 그 나름대로 가능한 것이 있고 불가능한 것이 엄격히 별도로 있는 것이다. 그러니 미미한 인간들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

위대한 빛을 가진 태양이 빛으로 우주를 밝히듯이 위대한 덕을 지닌 성인이 인간세상의 어둠을 훤히 밝혀준다. 그래서 수많은 인간들은 인간 답게 사는 길을 알게 되었고, 비인간답게 사는 길도 알게 되었다.

태양은 빛으로 우주공간에 밝음과 어둠을 갈라놓았고, 성인은 덕으로 인간세상에 선과 악을 갈라놓았다. 그래서 천상에서 살아가는 선한 인간, 다시 말해서 욕심 없이 행복하게 사는 이상적인 삶을 영위해 가는 천상 인간만큼 좋은 삶 같은 것이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아름답고 신비한 것도 많지만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만큼 더 좋은 것도 없을 것이다.

반래개구(飯來開口)요 수래합안(睡來合眼)이라.

밥이 오면 입이 열려지고 잠이 오면 눈이 붙어지네!

바람에 나부끼는 긴 실오라기 하나를 가지고 명경지수 같이 꼼짝 않는 수면을 건드리면 조그마한 파도가 인다. 그것이 이어져서 자꾸만 천파만파로 확대되어 퍼져나간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음에 있어서도 극미하게 불순한 생각이 일어나게 되면 점점 커져서 악이 확대된다. 이것은 마치 커다란 제방에 바늘 구멍만한 구멍으로 인해 물이 새게 되면 점점 커져 나중에는 그 제방이 터지게 되는 이치와 같다.

밤도 잠들고 물도 잠들어서 고기마저 잠들어 버렸다. 그래서 천지와 수어(水魚)가 온통 잠들어 깊은 침묵일 뿐이다.

이러한 정적 속에 소리 없는 달빛만이 밝게 강상(江上)으로 쏟아 붓고 있다. 어디선가 늦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빈 배가 달빛을 가득히 적재해서 흘러가고 있다.

밤이 고요하듯이 마음이 고요해야 하며, 물이 차갑듯이 마음은 이성을 찾아야 되며, 고기도 밤이 되면 본능적으로 먹이를 취하려 하지 않듯이 사람들도 분수를 지켜 허덕이지 말아야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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