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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계종 단양 약천사 혜담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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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8-10 13:07 조회2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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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계종 단양 약천사 혜담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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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젖히고 미륵을 뵙고

문을 열고 석가를 뵙네.

끼리끼리 위 없는 부처님께 예배하며

법왕가에 유희하리.

 

捲권箔박逢봉彌미勒륵 開개門문見견釋석迦가

三삼三삼禮예無무上상 遊유戱희法법王왕家가

 

혜담 스님은 게송하여 말하되

“극락당선만원동(極樂堂前滿月容)

옥휘금색조허공(玉麾金色照虛空)

약인일념칭명호(若人一念稱名號)

경각원성무량공(頃刻圓成無量功)

 

극락당 앞의 만원 같으신 모습

옥휘에서 금색을 발하여 허공을 비추시네.

만일 어떤 이가 일념으로 그 맹호 일컬으면

잠깐 사이에 무량공덕을 원만히 이루리.”

 

 

혜담 스님은 “금불불도로(金佛不度爐), 목불부도화(木佛不度火)하고 이불부도수(泥佛佛度水)라.

금으로 된 부처는 용광로불을 제도하지 못하고, 나무로 된 부처는 불제도하지 못하고, 흙으로 된 부처는 물로 제도하지 못한다”고 할 했다.

혜담 스님은 “금이 아무리 찬란하고 불 빛나는 물체지만 용광로의 뜨거운 불 속에서는 녹아버려서 그 힘을 잃게 된다”며 “이것은 마치 지네란 놈이 아무리 독하고 흉칙한 충류이지만 닭에게는 꼼짝도 못하는 친적인 것과 같지만 그러나 지네는 죽은 닭의 뼈가 있는 곳에는 죽어라 하고 몰려드는 이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혜담 스님은 “나무가 산을 무성하게 하고 나중에는 재목이 되어 인간생활에 도움을 주는 물체이지만 불 앞에서는 당할 재간이 없고, 이것 역시 고양이란 놈이 쥐를 잘 잡는 것이 능사이지만 호랑이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는 이치와 같고, 또한 호랑이란 놈이 고양이를 보고 가라사대 ‘저 놈의 꼴이 꼭 어른(호랑이)을 닮았다’고 하면서 ‘잡히기만 하면 찢어 버린다’고 호통쳤지만 세상만사는 자기 욕심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극상생의 진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물주는 고양이에게는 나무에 오르는 재주를 가르쳐주었기에 호랑이가 잡으러 오면 급히 나뭇가지로 기어올라가면서 놀려주며 애를 먹인다고 한다.

진흙을 고체화시켜 놓은 조각작품이나 예술품들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물에게는 이겨내질 못하고 사르르 녹아버린다. 이 역시 쥐란 놈이 인간생활의 여러모로 괴롭히다가 고양이만 보면 혼비백산을 하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쥐가 고양이를 먼저 발견하고 도망을 가다가 구멍으로 쏙 들어가 숨어버리면 고양이란 놈은 하루 종일 쥐구멍 앞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쥐는 고양이가 노려보는 구멍 밖으로 나올 리가 없다.

그래서 고양이는 하루 종일 애만 먹고 그 날의 사냥을 허탕치고 마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이 세상 값진 가치를 가진 좋은 보물들일지라도 상극이 있는 법이다. ‘딸을 예쁘게 키워놓으면 사내가 잡아 먹어버리고, 돈도 힘들게 벌어두면 자식이란 놈들이 다 써버리고, 아들도 애지중지 키워서 부모에게 효도할 줄 알았지만 장가들고 나면 계집에 빠져서 가까웠던 부모 자식 간이 십만팔 천리로 멀어져 버린다’

이러기에 이를 일러 상극상생(相克相生)이라고 일컫는다. 그렇다고 딸을 낳아 기르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돈을 모으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며, 그렇다고 아들 장가를 보내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용광로가 겁나서 금불(金佛)을 만들지 않을 수도 없으며, 불이 겁나서 목불(木佛)을 만들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며, 물이 겁나서 토불(土佛)을 만들지 않을 수도 없는 이치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삼불(三佛)이 모두 가짜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이다. 무엇이 진짜냐 하면 용광로나 불이나 물에게 녹아지거나 태워지거나 풀어지지 않는 무형이면서도 유형인 보배로운 마음을 닦아 영생과 장생하는 법을 알도록 모름지기 노력해야 됨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득수반지미족기(得樹攀枝未足奇)요 현의철수장부아(縣義撤手丈夫兒)라. 수한야냉어난멱(水寒夜冷魚難覓)이어늘 유득공선재월귀(留得空船載月歸)라.

“나무에 올라 가지를 휘어잡는 것이 넉넉히 기이한 것이 아니고 언덕에 매달려서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 대장부이다. 물이 차가운 늦가을을 밤에는 고기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매어 있던 빈 배가 명월을 싣고 돌아가고 있다.

큰 나무에 올라서 큰 나뭇가지를 휘어잡아 당기는 무모한 곰 같은 힘이나 무지한 체력 따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 이렇듯 낭떠러지의 언덕에 매달려있다가 손을 놓을 수 있는 간담과 용기와 용감성이 필요한 것이다.

대장부라고 하는 것은 남이 감히 흉내도, 모방도 할 수 없는 독보적인 준족(駿足)을 남겨야 되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역사의 백지와 모래벌판 위에 큰 한 획을 그어야 되는 것이다. 즉,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은 장부의 일이 아니고 필부들의 일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강가에 매어 놓았던 외로운 배가 서서히 풀려나더니 중천인 천심(天心)에서 내려 쏟아대는 달빛을 가득히 싣고간다. 수월화조(水月和照)하는 수면에 밀려서 어디론지 떠나가고 있다. 외롭고 쓸쓸하고 밝고 맑고 고요하고 조용한 정경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명상의 세계에서 우리 인생은 내면에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천성을 찾아내어 내 몸은 빈 배가 되고 나의 천성은 달이 되어 이것을 조용히 간직하고 때 묻지 않은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든다.

법상비법상(法相非法相)하니 개권복성장(開拳復成掌)이고

부운산벽공(浮雲散碧空)하니 만리천인양(萬里天一樣)이라.

“믿었던 법상이 법상이  아니고, 주먹을 펴니 다시 손바닥이 되고, 부질없는 구름이 자취를 감추어 만리가 한 모양으로 이어진 하늘이로다.”

우리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을 믿고, 부모 형제를 믿고, 권력·돈·사랑·신앙 따위를 믿고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은 일종의 맹목적이든 절대적이든 간에 믿음을 걸고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따위들도 죽음과 퇴운(退運)의 경우에는 비참한 허상으로 와닿게 된다. 꽃의 몽우리가 터지면 꽃이 피듯이, 우리 인생도 굳게 지키고 고이 간직했던 내면의 빛을 발하면 화려하고 전아하고 우아한 인생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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