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조계종 법계사 주지 원공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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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8-27 13:34 조회56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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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조계종 법계사 주지 원공스님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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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통하여 이 명제만큼 심각하고 절박하며 중요한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유사 이래로 수많은 사상가와 철학자들이 어두운 밤을 지키며 깊은 사색과 명상으로 삶을 불태웠습니다.
동서양의 많은 생각 있는 사람들이 이 의심을 결단내기 위하여 사하라사막을 종횡으로 누비고,고비사막을 고행의 전쟁터로 삼아 일생을 내던졌던 것이지요.
지금도 히말라야의 설원에서 극한의 자연조건을 견디며 오직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심 하나를 생명줄로 삼는 수행자들이 밤하늘의 별들을 머리에 이고있습니다.
쉽게 결판나지 않는 전쟁은 오늘도 치열하여,그 끝을 기약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오히려 무심한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아니 ‘나는 무엇인가?’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과거는 인간일 수도 동물일 수도 있으며,아니면 이름 없는 풀잎 위 한 방울 이슬이었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알 수 없는 과거에서부터 시작된 내 공간성은 미래로 향하는 끝없는 윤회 의 그 어떤 한 물건입니다. 수영 선수가 광활한 태평양을 헤엄쳐 나갈 때에 그의 머리는 물속에 잠겼다가 잠시 후에는 떠오릅니다. 그러다가 다시 잠기고 떠오르는 반복현상이 그의 삶의 진면목입니다. 이러한 동물적 경향성과 윤회성을 단절하는 것이 소위 깨달음일 테지요.
내가 세상에 올 때는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온 것 같은데,사실은 내 간절하고 끈질긴 의지에 의해서 지금의 내 모양이 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단지 망각의 병은 삼세의 깊은 이치를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요. 그러므로 나는 누구도 원망할 수 없습니다. 원인과 결과를 내 스스로 짓고 받는 것이므로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책임은 내게 있게 됩니다.
인도의 사상가 마하리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로써 세상에 대하여 의문을 던졌습니다. 그 의심의 내용은 반드시 어떤 당체나 실체를 전제한 의문입니다. 이른바 바라문교의 브라만 사상인데,우주를 창조한 근본원리로서의 범은 신적인 형상을 가정합니다.
그러나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은 철저히 인격적인 아트만을 부정함으로써 범과 함께 범아일여의 공론을 부정합니다. 이름하여 아공(我空)이요 법공(法空)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나’ 의 의미 같은 것은 없습니다. 던져진 존재로서 무한한 욕망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오직 업의 공능작용만이 억만년을 두고 그림자처럼 따를 뿐이지,내가 무엇인가 혹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의심에 대한 실체적인 해답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없을지라도 경험적으로 느끼는 속제로는 분명히 존재하기에 묘유가 됩니다.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도리여서,인식적 차별인 4구(四句)의 제3구가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양 무제가 달마대사에게 ‘내 앞의 그대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던지자,달마는 ‘오직 모른다’ 고 대답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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